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경 전투 (문단 편집) ==== 왜 프랑스군이 '''거기로''' 갔나? ==== ||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15249eac221d2bb5cf5e6ebf742433c2.jpg|width=250]][* 카이저 빌헬름 2세에게 [[참교육]]을 시전하고 있는 조프르] || [[제17계획]]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제17계획하 프랑스군의 주공은 [[알자스-로렌]]를 향해서였다. 그러나 중립국 벨기에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독일과 프랑스 모두 주공 지역은 [[알자스-로렌]]밖에 남지 않았고, 그 덕에 알자스-로렌은 양국 모두 요새화가 잘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알자스-로렌은 언덕이 많고, 숲이 우거진 데다가 수로가 많아서 공세하기에 버거운 지역이었다. 그 결과, 앞서 언급했듯이 벨기에 침공을 고려하지 않은 독일의 폰 몰트케(大)는 프랑스를 짧은 전면전으로 꺾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는데 이는 프랑스군이라고 다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독일이 벨기에의 중립을 무시하고 침공할 것이란 예상은 1914년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 육군대학의 교장 [[페르디낭 포슈]]와 그의 영국인 친구이자 캠벌리 참모대학의 교장 헨리 윌슨은 이미 벨기에 침공을 기정사실로 두고 영·불합동작전을 논했다. 즉, 언뜻 보기에는 로렌 공세는 '''[[삽질|적의 주공이 빤히 약점을 향해 돌격하는 상황에서 요새화 잘된 지형을 향해 주력을 보내는 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프랑스군 수뇌부는 무뇌만 가득찬 집단이 아니고 앞서 언급한 약점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17계획]]의 입안자 노엘 드카스텔노는 릴(Lille)[*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만약에 독일이 벨기에를 가로지른다면 점령의 위협이 도사릴 정도로 벨기에와 가깝다. 참고로 [[1차대전]]중에 [[독일]]에게 점령당한 도시 중 하나다.]의 요새화를 포기하겠다는 결정에 항의하는 릴의 군정장관 레브하(Lebras)에게 지도를 펼쳐서 [[벨기에]]에서부터 릴까지의 거리를 손수를 자를 대서 측정해 보인 후 '''"그렇다면 끊어버리면 된다!'''"(We'll cut them in half!)라 답했다. 즉, 카스텔노의 제17계획은 독일의 거대한 우익기동을 무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충분히 고려해서 도출해낸 전쟁계획이었다. 카스텔노의 의도는: * 만약에 독일군이 거대한 우익기동를 기획했다면 중부와 좌익은 비교적 약할 것이다. * 게다가 동맹군 러시아군 덕에 독일군은 전력이 분산될 수 밖에 없다. * 프랑스군이 아르덴과 로렌을 공격한다면 독일의 약점을 찌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약점이 공격당한 독일군은 당연히 우익기동을 포기할 수 밖에 없고 전력을 나머지 전선에 배분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 프랑스군은 이제 혼란에 빠진 독일군을 쭈욱 밀고 들어가서 러시아와 함께 '''[[베를린]]까지 점령하면''' 전쟁은 프랑스의 승리로 끝맺는다. * 그리고 알자스-로렌을 전초에 점령하는데 성공한다면 프랑스의 국민들과 병사들 모두 사기가 높아질 것이라는 점은 덤. 이런 요점들과 '''만약에''' 독일군이 예비대를 활용하지 않고 오직 정규군만 일선에 투입한다는 가정을 덧붙인다면 우익에 전력을 집중하는 순간 너머지 전선은 너무 늘어나게 되므로 카스텔노의 계산은 그다지 헛된게 아니게된다. 요약하자면 [[제17계획]]은 단순히 [[알자스-로렌]] 회복이 아닌 우익에 편중된 독일군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그대로 밀어버린다는 나름대로 생각이 들어간 전략이다. ||프랑스 제2군의 사령관[br]'''노엘 드카스텔노'''[* 귀족적인 성향으로 말이 많지만, 1914년의 고위장군 중 거의 유일하게 1918년까지 활약한다.][* 1914년의 고위장군 중 1918년에 현역으로 활약한 인물은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낭 포슈]], 동방연합군(Allied Army of the Orient)의 사령관 [[루이 프랑셰 데스페레]](Louis Franchet D'Esperey)와 동부집단군 지휘관 카스텔노뿐이다. 즉, 이 3명만이 1차대전의 막대한 전술과 기술변화속에 능력을 유지할 정도의 유연한 사고를 지녔다는 뜻이다. 게다가 데스페레의 경우에는 1918년 초에 구시대적인 전술만 고집하다가 대패당해 사실상 유배된 거라...] || 그러나 프랑스군 수뇌부에서 무슨 생각을 하건 이는 사실상 작전의 의도라기보다 이미 있는 작전 내용을 어거지로 정당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군이 적의 의도를 알면서도 적의 의표를 찌른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프랑스군의 약점이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독일군의 주력은 프랑스군의 약점을 공격하고 프랑스군의 주력은 방어에 적합한 지역에 있는 요새화된 독일군을 공격한다는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군의 거창한 의도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우리가 먼저 공세를 성공시키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새화된 지역을 공격하는 프랑스군이 어떻게 개활지로 공격하는 독일군보다 먼저 공세를 성공시켜서 독일군이 공세를 포기하고 방어로 돌아서게 만들 것인지, 독일군이 먼저 공세를 성공시킬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전무했다'''. 더구나 예비대를 활용하는데 매우 부정적인 프랑스군과 달리 독일군은 '''예비대를 일선에 쓰는데 별 거부감이 없었다.''' 게다가 독일군은 프랑스군이 알자스-로렌을 향해 공세를 펼칠 것을 충분히 예상했기에 요새, 기관총, 야포등을 충분히 준비해 최대한 프랑스군의 공세를 효율적으로 방비하는데 만반의 준비를 해뒀다. 이에 한술 떠서 독일군은 프랑스의 공격을 격퇴하는 것을 넘어 아예 '''깊숙히 유도하는 전략을 세웠다.''' 1906년에 폰 몰트케(小)가 독일군 참모총장을 역임하면서 우익의 전력을 배분하면서까지 프랑스군을 상대하기 위해 좌익을 강화했다. 프랑스군은 로렌을 향하면서 독일군의 약점을 찌르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으로 독일군이 놓은 함정에 그대로 걸어들어가는 꼴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